행림(杏林)에서의 산책

시간, 공간과 물

향련 2011. 5. 20. 14:03

천인합일(天人合一)

 

한의학은 도가(道家) 학술 체계의 하나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강조한다. 도가에서는 사람의 몸을 하나의 소우주(小宇宙)로 본다. 인체의 모든 기혈(氣血)순환과 흐름에는 모두 대우주(大宇宙)와 상호 연결된 통로가 있다. 그래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 등 우주의 특성을 빌려 사람의 기(氣)조절하고 침구로 사람의 기와 우주의 기를 연계하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과학에서 물은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 한 개가 결합된 H2O를 가리킨다. 하지만 명(明)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물을 상세히 분류하고 있다. 즉, 천수(天水 하늘에서 내리는 물) 13종류와 지수(地水 땅에서 유래한 물) 30종류가 기재되어 있다.


전통 한의학에서는 “어린아이가 밤에 울 때는 우물물로 금을 끓여 치료한다” “음양수(陰陽水)는 반은 건조하고 반은 습한 물이라 곽란(霍亂)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록이 있다. ‘본초강목’에서 처음 이런 비슷한 내용을 보았을 때 나는 우스갯소리로 여겼다. 그러나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한 후 오랜 시간 굳어 있던 사상의 틀이 깨졌고 식견은 갈수록 넓고 깊어졌다. 아래에 ‘본초강목’에 수록된 물 일부와 그것의 성질과 치료원리에 대해 정리했다.

 

시간에 따른 분류


-입춘우수(立春雨水 입춘에 내린 빗물)
입춘우수에는 승발(升發)하는 봄기운이 있다. 그래서 이를 끓여 먹으면 ‘중기(中氣)가 부족하고 청기(淸氣)가 올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치료할 수 있다. 옛날 처방 중에 불임부부가 이 물을 한 잔씩 마시고 자면 아이가 생긴다고 했다. 즉, 봄의 기운이 담긴 이 물에는 만물을 자생(資生)하고 자라나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매우수(梅雨水 매화 열매가 익을 때 내린 빗물)
매우(梅雨)란 음력 5월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내리는 빗물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에 매화 열매가 익기 때문에 매우라 한 것이다. 이시진(李時珍)은 이 물의 효능에 대해 부스럼과 옴(瘡疥)을 씻으면 흉터를 없앨 수 있고 또 이 물로 장을 담그면 장이 잘 익는다고 했다.

 

-액우수(液雨水)
액우수란 입동(立冬 보통 11월 7일) 후 열흘부터 소설(小雪 보통 11월 23일)사이에 내린 빗물을 말한다. 액우(液雨) 또는 약우(藥雨)라고도 한다. 각종 벌레가 이 물을 먹고 동면에 들어가며 봄이 되어 우레가 울릴 때면 비로소 깨어난다. 때문에 이 물에는 각종 벌레를 죽이는 효능이 있다. 현대 화학의 지식으로 보면 빗물은 수증기가 증발해 공중에 올라가 찬 기운을 만나 응결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고대 중국인은 이와는 전혀 다른 혜안(慧眼)이 있었으며 경험을 통해 각기 다른 시기에 내린 빗물에는 각기 다른 효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간에 따른 분류
-반천하(半天河)
반천하는 상지수(上池水)라고도 하는데 주로 대나무 울타리 꼭대기 및 높은 나무의 구멍 속에 있는 빗물을 가리킨다. 상지수는 귀신들린 병, 미친 병, 악기(惡氣) 등을 치료한다.‘전국책(戰國策)’에는 명의 편작(扁鵲)이 상지수를 마신 후 사람의 오장육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투시능력이 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고총수(古塚水 오래된 무덤의 물)
오래된 무덤의 물에는 독(毒)이 있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고총수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치료에 응용하는데 당나라 때의 의학자 진장기(陳藏器)는 이 물로 부스럼을 씻으면 잘 낫는다고 했다.

 

-수레바퀴나 소발굽의 물
이 물은 움직임이 좋아 문둥병이나 악성종기 등 고질적인 질병에 효능이 좋다. 5월 5일에 채취한 물로 씻으면 더욱 좋다.


제작방법에 따른 분류
-음양수(陰陽水)
음양수는 생숙수(生熟水)라고도 하는데 새로 길어온 우물물과 맹물을 오래 끓인 백비탕(百沸湯)에 절반씩 섞어 만든다. 이 물은 구토하고 설사하는 곽란(霍亂)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시진(李時珍)은 음양수의 효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삼초(三焦)가 잘 통하고 음양(陰陽)이 조화로우면 기(氣)가 오르고 내리는 것이 순조로우며 오장육부(五臟六腑)도 건강하다. 하지만 일단 길을 잃게 되면 음기(陰氣)와 양기(陽氣)가 서로 뒤섞여 원래 내려가야 할 음기가 내려가지 않고 원래 올라가야 할 양기가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곽란(癨亂)이나 구토(嘔吐) 증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럴 때 음양수를 마시면 뒤섞인 음양을 갈라 각기 자기 길로 가게 하므로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

 

-감란수(甘瀾水 많이 휘저어 거품진 물)
방제학(方劑學)의 비조(鼻祖)로 알려진 장중경(張仲景 150-219)의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 복령계지감초대조탕 조문에는 감란수를 사용해 분돈(奔豚 역주: 장의 경련으로 아랫배가 쥐어짜듯이 아프고 심하면 위로 치받는 병)을 치료하는 내용이 있다. 감란수를 만드는 방법은 물 세 말을 큰 동이에 넣고 자루를 이용해 수천 번을 휘젓는다. 오랫동안 저으면 물 위에 거품 같은 물방울이 5,6천 개 정도 생기는데 이것을 약으로 사용한다. 물을 오래 휘저은 감란수는 물의 성질이 부드럽게 변해 신(腎)을 해치지 않는다. 한의학에서는 분돈병의 원인을 ‘신기(腎氣)가 심(心)을 침범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신(腎)을 다스려야 하는데 물의 성질이 거칠면 혹 신을 해칠까 우려해 감란수를 사용한 것이다. 

 


 


글/ 후나이원(胡乃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