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列女)전

서시(西施), 물고기도 부끄러워 물 속에 숨다

향련 2010. 5. 18. 13:30

서시(西施), 물고기도 부끄러워 물 속에 숨다

 

 

 

▲ 물고기도 부끄러워 물 속에 숨었다는 전설의 미인 서시./그림=유쯔(柚子)

 

 

아름다운 여인의 미모를 표현하는 중국 속담에 “물고기가 물속으로 내려가고 기러기가 아래로 떨어지며 달은 구름 뒤로 숨고 꽃은 부끄럽게 만든다.(沉魚落雁,閉月羞花)”는 말이 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사람이 아닌 물고기와 기러기, 심지어 하늘의 달과 꽃마저 부끄러움을 느껴 몸을 감췄겠는가.


예부터 땅이 넓고 사람 많기로 유명한 중국 역사상 수많은 인물들이 역사의 무대에 나타났고 숱한 미인들이 출현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미인을 들자면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서시, 왕소군(王昭君),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가 있다. 이들의 시대를 보면 서시는 춘추전국시대, 왕소군은 한대(漢代), 초선은 삼국시대, 양귀비는 당(唐)을 대표한다.


앞서 언급한 속담에서 첫구절에 나오는 ‘침어(沉魚 물고기가 물속으로 내려간다는 의미)’라는 표현은 서시를 가리킨다.


서시의 본명은 이광(夷光)으로 춘추전국시대 절강사람이다. 당시 절강 저라산(苧蘿山) 아래에 마을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동촌(東村)이고 또 하나는 서촌(西村)이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시(施)’씨 성을 갖고 있었다. 시이광(施夷光 서시의 본명)은 그중 서촌에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서시(西施 서촌에 사는 시 씨 성을 가진 여인이란 뜻)’라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서시는 늘 여자 친구들과 포양강(浦陽江) 강변에 가서 빨래를 했다. 물 위로 드러난 부용(芙蓉)처럼 뛰어난 그녀의 미모는 물고기들마저 미모에 놀라 강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침어(沉魚)’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당시 서시가 살던 곳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인 월왕 구천(勾踐)이 다스리고 있었다. 구천은 당시 오왕(吳王) 부차에게 큰 패배를 당했다. 구천은 복수를 위해 모욕을 참고 견디며 겉으로는 온갖 정성을 다해 오왕을 모시며 그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구천은 겉으로는 오나라를 떠받들고 섬기면서도 안으로는 힘을 기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그를 돕던 신하가 범려와 문종이었다. 구천은 몸소 농사를 지으며 백성들을 독려하고 인재를 널리 모집하는 등 나라를 되찾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부차에게 당한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쓸개를 걸어두고 그 맛을 보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구천은 오나라에 매년 수많은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선물로 바쳤지만 생각만큼 큰 효과가 나타나진 않았다. 이에 전국 각지로 사람을 보내 뛰어난 미녀를 찾도록 했다.


물고기도 놀라 숨을 정도로 뛰어난 미색을 갖춘 서시에 대한 소문을 들은 구천은 많은 황금을 가지고 가 서시를 설득했다. 서시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를 되찾기 위한 구천의 대업(大業)을 완수하기 위해 협조하리라 마음먹었다.


전설에 따르면 서시가 화려한 능라주단을 걸치고 호화로운 마차를 타자 그 몸가짐이 더욱 단정하고 위엄이 있었다고 한다. 가는 도중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구천은 서시를 궁궐로 데려온 후 악사(樂師)를 파견해 노래와 춤 및 몸가짐을 익히게 했다. 이렇게 3년이 지난 후 범려(範蠡)를 시켜 서시와 정단(鄭旦)이란 미녀를 오왕에게 바치게 했다. 오왕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투지를 마비시키기 위한 계략이었다.


범려가 오왕에게 서시를 바치자, 오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오자서(伍子胥)가 “제가 들으니 상(商)나라는 달기 때문에 망했고 주(周)나라를 포사 때문에 망했다고 합니다. 미녀란 모두 나라를 망치는 것이니 대왕께선 절대 저들을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이미 서시에게 넋을 잃은 오왕에게 그의 말이 귀에 들어갈 리 만무했다.


오왕은 서시를 얻은 후 하루 종일 서시의 미색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부차는 서시의 환심을 사기 위해여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켰고 영암산(靈巖山)에 화려한 관와궁(館娃宮)을 짓고 온갖 보석으로 호화롭게 장식했다. 또 도성인 고소성(姑蘇城)에 ‘춘소궁(春宵宮)’을 짓게 하고 밤새 환락에 빠졌다. 아울러 서시를 위한 특별 무대를 만들어 그녀가 마음껏 춤을 출 수 있게 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서시가 나막신을 신고 가는 허리를 흔들며 나풀나풀 춤을 출 때면 오왕은 마치 술에 취한 듯 깊이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오왕은 점차 생기를 잃어갔고 투지도 사라져 정치가 황폐해졌다. 도처에서는 반란이 일어났고 친족마저 이탈하면서 오왕은 마침내 월왕 구천에게 멸망당했다.  


서시는 타고난 미모로 구천을 도와 나라를 되찾는 큰일을 도왔다. 하지만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일설에 따르면 오왕 부차가 고소성에서 자결할 때, 분노한 오나라 사람들이 서시를 꽁꽁 묶어 강물에 가운데 빠뜨려 죽였다고 한다. 또 어떤 설에는 그녀가 범려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할 뿐이다. 서시의 운명이 실제로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은 ‘서시(西施)’라는 작품에서 그녀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西施越溪女        월나라의 빨래하던 아가씨 서시는
出自苧蘿山        저라산 기슭의 완사계(浣紗溪) 출신
秀色掩今古        빼어난 용모는 고금에 둘도 없고
荷花羞玉顔        연꽃도 그녀의 예쁜 얼굴에 부끄러워했었지
浣紗弄碧水        푸른 물결 일으키며 비단을 빨며
自與淸波閒        스스로 한가로이 맑은 물을 벗 삼았지
皓齒信難開        눈처럼 하얀 치아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沈吟碧雲間        나직이 부르는 노래 구름 위로 올라갔네
勾踐徵絶艶        구천이 이 절세가인을 불러들여 
揚蛾入吳關        눈썹을 치켜세우고 오나라로 들어갔지
提攜館娃宮        오왕이 손을 잡고 관아궁에 올랐거니
杳渺詎可攀        아찔하게 높은 그곳은 어찌 올랐을까
一破夫差國        부차의 월나라를 물리치고 떠난 뒤로
千秋竟不還        천 년토록 끝끝내 돌아오지 않았네

 



핑핑(平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