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중국사

신화 시대의 주인공 삼황(三皇)

향련 2008. 2. 10. 10:43
 


신화 시대의 주인공 삼황(三皇)


천지와 인류를 창조하다


천지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서방에서는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했다는 설이 있고 중국에서는 반고(盤古)가 천지를 개벽했다는 설이 있다.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우주는 반고라고 불리는 신(神)에 의해 창조되었다. 편의상 이를 반고 우주(盤古宇宙)라고 하자. 생각해보면, 반고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마치 사람이 모체 속에서 배태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작은 입자에 불과했다. 혼돈(混沌) 상태 중에서 우주는 점차적으로 생성되었고 우주 중의 층층 물질이 층층의 하늘과 땅을 만든 동시에 천지 사이의 만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반고와 같은 신과 층층의 중생을 포함하며 지구상의 산천수목과 조수(鳥獸), 곤충과 어류 등을 포함한다.


지구에 천지와 만물이 생겨난 후 천상의 신들이 내려와 각자 자신의 법력(法力)을 이용해 자신을 모방한 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여와(女?)라는 한 여신(女神)이 창조했다고 한다. 여와는 아름다운 여신으로 사료에 의하면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서는 여와가 다음과 같이 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여와는 처음에 황토와 물로 자신의 모양을 따라 작은 진흙인간(小泥人)을 만들었다. 이렇게 한 무리 한 무리씩 만들다보니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이에 한 가닥 덩굴을 흙탕물에 넣은 후 휘둘러 흙탕물을 땅에 뿌리자 모두 사람으로 변했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신(神)인 여와는 인력(人力)이 아닌 법력(法力)으로 사람을 만들었다.


중국인들은 이때부터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 만들어 낸 사람은 우주, 생명과 인간 세상에 대한 인식능력이 전혀 없었고 환경의 변화에 대한 감당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사람과 같은 체계적인 사상은 더욱 없었다.



사람과 신(神)이 공존한 시기


이렇게 창조된 사람들의 기능을 풍부하게 하고 우주와 지구, 자연계에 대한 인식 능력과 감당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천상에서는 또 일부 신들이 내려와 사람들에게 각종 기본적인 생활기능과 지식을 가르쳐야 했다.


중국 땅에 가장 먼저 나타난 신이 바로 유소씨(有巢氏)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간단한 덮개를 만드는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원시적인 집으로 인류는 이를 통해 야수(野獸)와 홍수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중국 역사상 전설 속에 나오는 삼황(三皇) 역시 인류를 가르치기 위해 내려온 신들이었다. 삼황이 정확히 누구인가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주로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이라는 설을 가장 널리 받아들이고 있다. 사료(史料)에 따르면 삼황은 각기 수인씨, 복희씨, 신농씨로 존칭되었으며 여기서 ‘씨(氏)’의 원시적인 의미는 바로 신(神)이다.


수인씨는 가장 먼저 사람들에게 나무를 이용해 불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천상의 가장 큰 비밀을 인류에게 누설해 주었으니 바로 ‘불(火)’이었다. 수인씨는 사람들에게 나무를 이용해 불을 얻는 방법을 가르쳤다. 인류는 불을 얻은 후에야 비로소 익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신체도 건강해졌으며 생활방식도 비약적인 돌파를 이뤄낼 수 있었다. 이는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일화를 연상하게 한다.


복희씨의 사명은 바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며 씨를 뿌리고 경작해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생활로 이끄는 것이었다. 그는 또 사람들에게 불을 이용해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문자부호를 창조해 결승기사(結繩記事)를 대신했다. 이외에도 관직을 설치하고 백성들을 관리했으며 관원들의 몸에는 모두 한 마리 용을 그려 그들의 신분을 표시했다. 그는 또 주천(周天)의 수와 오행(五行)에 근거해 요금(瑤琴)이란 악기를 제작했으며 봉황의 날개 형상에 근거해 퉁소(簫)라는 악기를 만들었다. 아울러 『가변(駕辨)』이란 곡을 창작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는 엄격한 혼인의 예를 제정했으며 또 부부제도를 만들어 반드시 결혼이란 의식을 거친 후에야 자식을 낳을 수 있게 했다. 이로써 다음 세대로 하여금 부모의 교양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는 또 성씨를 확정하여 자신의 성을 풍(風)으로 정했으며 이때부터 중국인들은 비로소 성씨가 있게 되었다.


복희씨는 음양(陰陽)의 변화에 근거해 팔괘(八卦)를 창제했다. 전설에 의하면 복희씨가 어느 날 황하(黃河)에 갔는데 갑자기 용마(龍馬)가 등에 그림을 지고 나타났으며 이로부터 팔괘를 얻었다고 한다. 고대에는 이 그림을 하도(河圖 황하에서 나온 그림이란 뜻)라고 했고 또는 복희팔괘, 선천팔괘라고도 했는데 가장 원시적인 역경(易經)에 해당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하도는 사람에게 하늘의 뜻을 따르는 방법을 남겨준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늘 천상(天象)의 변화를 중시했고 천명(天命)은 어기기 어렵다고 보아 하늘을 무한히 공경했다.


이후 인류는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인류에게 혼인의 예법(禮法)이 생긴 후 인구는 번식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주로 사냥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는데 인구가 증가하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사냥감이 점점 부족해졌다. 아울러 인류는 불이 있었고 요리법을 알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많은 음식물이 필요했다. 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어느 것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알아야 했고 또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할 약이 필요했다. 이에 신농씨가 내려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신농씨(神農氏)는 어떤 것이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인지 알기 위해 인공적인 종자번식으로 각종 꽃, 초목과 열매를 채집했으며 이를 일일이 씹어보고 맛을 보아 그것들의 성질과 기능을 확정했다. 지금까지 수천 년을 이어온 한의학과 한약의 발전은 사실 모두 신농의 본초(本草)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신농씨는 중국의약의 시조로 존중 받았다. 이외에도 신농씨는 오현금(五絃琴)을 창조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생활을 풍부하게 했다. 그는 또 쟁기와 보습을 발명해 백성들에게 경작을 가르쳤으며, 도자기를 제작해 물을 담고 운반하며 음식물을 익힐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신농 시대에 들어와 중국은 비로소 농경사회로 진입하였다.


중국 역사상 삼황(三皇)이 등장한 기나긴 세월을 돌이켜보면 결국 신이 사람을 창조한 후 한동안 사람과 신이 공존하는 시기가 있었고 이 시기에는 천상의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인류에게 직접 문화를 전수해 주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역사의 첫 시작부터 하늘을 무한히 공경했다. 하늘을 공경하는 것은 단지 중국문화가 신을 믿는 문화일 뿐만 아니라 신이 전해준 문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