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전설: 폭죽의 유래
글 :루즈(茹之)
폭죽(爆竹)을 민간에서는 ‘폭장(爆仗)’, ‘화편(花鞭)’ 또는 ‘향편(響鞭)’ 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매년 제석(除夕 섣달 그믐)이면 집집마다 폭죽을 터뜨린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폭죽 소리에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더욱 돋보이고 명절 분위기 역시 더욱 짙어진다.
송년회를 하기 전에 사람들은 폭죽을 한방 터뜨리길 좋아하는데 이를 가리켜 속칭 ‘문을 닫는 폭죽(閉門?仗)’이라 한다. 한밤 자시(子時)가 되면 맹렬한 폭죽 소리로 귀신과 요괴를 쫓고 새해를 맞이한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또 폭죽을 터뜨리는데 이것을 ‘문을 여는 폭죽(開門?仗)’이라 한다. 폭죽 세 개를 연속으로 터뜨리는 것을 ‘연중삼원(連中三元 원래 의미는 향시, 회시, 전시에서 잇달아 수석을 차지한 사람을 말함)’이라 하고 네 개를 터뜨리면 ‘복(福), 록(祿), 수(壽), 희(喜)’라 한다. 여섯 개를 터뜨리면 ‘만사형통(六六大順)’이라 하고 찢어진 폭죽 종이로 자기 집 문을 덮는 것을 일러 ‘온 천지에 금전(滿地金錢)’이라고 한다.
폭죽의 역사는 2천여 년이 넘는다. 고대에는 귀신을 쫓는 물건으로 사용되었으며 폭죽을 터뜨리면 귀신과 요괴를 몰아낼 수 있다고 여겼다. 전설에 따르면 중국 고대에 ‘년(年)’이란 이름을 지닌 괴수가 있었는데 키가 크고 날카로운 뿔을 지녔으며 아주 사나웠다. ‘년’은 1년내내 바닷속 깊은 곳에 머물렀지만 제석이 되면 육지로 기어 올라와 가축을 잡아먹고 사람을 해쳤다. 때문에 매년 제석 무렵이 되면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년’을 피해 노인과 어린이들을 데리고 깊은 산속으로 도망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 제석, 사람들이 물건을 챙겨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때 마을 동쪽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마을에 사는 한 노파를 찾아가 하룻밤만 머물 수 있게 해주면 반드시 ‘년수(年獸)’를 몰아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노파 역시 빨리 산으로 피신하는 게 좋겠다고 권했지만 노인은 끝까지 남을 것을 고집했다. 사람들은 노인이 아무리 권고해도 말을 듣지 않자 곧 뿔뿔이 산으로 흩어졌다.
드디어 ‘년’수가 예년과 마찬가지로 마을에 들어와 해를 입히려 할 때 갑자기 폭죽소리가 들려왔다. ‘년’은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원래 ‘년’수는 붉은 색, 불빛과 큰 소리를 가장 두려워했다. 이때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집안에 있던 붉은 도포를 입은 노인이 나타나 “하하!” 크게 웃자 ‘년’수는 깜짝 놀라 황급히 달아났다.
다음날 아침 마을 사람들이 산에서 돌아와 마을에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백발 노인이 바로 자신들을 도와 ‘년’수를 물리친 신선임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동시에 백발노인이 남겨놓은 ‘년’수를 쫓는 3가지 법보(法寶)를 발견했으니 이중 하나가 바로 폭죽이었다.
이후 매년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은 집집마다 등불을 환히 밝히고 밤을 새면서 폭죽을 터뜨리며 새해를 맞았다. 이 풍속은 갈수록 널리 퍼져 중국 민간에서 가장 성대한 전통명절인 ‘설 쇠기’가 되었고 폭죽을 터뜨리는 것 역시 새해를 맞는 중요한 풍속이 되었다.
사료에도 이와 유사한 설명이 나온다. 서한 시기 동방삭(東方朔)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신이경(神異經)》에는 서방 깊은 산속에 ‘산소(山?)’라는 이름의 요괴가 있다고 한다. 이 요괴는 사람들에게 한열병(寒熱病 열이 나면서 으실으실 추운 병)을 걸리게 하므로 이 요괴를 쫓아내야만 사람들이 평안히 살 수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산소는 불을 무서워하고 큰소리를 두려워했다. 이에 사람들은 이 요괴에 대한 대처방법을 생각해냈으니 바로 대나무를 불더미에 넣고 태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대나무가 탈 때 대나무 마디에서 뿌지직하는 소리가 나면서 산소를 쫓아낼 수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폭죽 제작방법일 것이다.
육조(六朝) 시기에는 설을 쇨 때 사람들이 폭죽을 터뜨리는 것이 이미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남조 양(梁)나라 때 종름(宗?)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정월 초하루는 삼원(三元)의 날이다. ‘사기(史記)’에서는 이날을 단월(端月)이라 했다. 닭이 울면 일어나 먼저 뜰 앞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풀을 태워 나쁜 기운과 악귀를 몰아낸다.” 이것이 나중에 ‘문을 여는 폭죽’의 유래가 되었다.
당(唐)나라 때는 초기부터 폭죽을 터뜨려 돌림병을 몰아내는 풍속이 있었다. 당시 이전(李田)이란 인물이 있었는데 초석(硝石)을 대나무 통 속에 넣고 불을 붙여 폭발시키면 아주 큰 소리와 함께 짙은 연기가 발생해 산람장기(山嵐?氣 전염병을 일으키는 나쁜 기운)를 몰아내고 돌림병을 막을 수 있었다. 이것이 초석을 이용해 폭죽을 만든 최초의 형태이며 나중에 ‘폭간(爆竿)’으로 불렸다.
화약이 발명되어 널리 사용되었던 송나라 시기에는 폭죽을 만들 때 종이로 심지를 만들어 화약에 불을 붙였다. 또 삼 줄기 속에 화약을 넣고 이를 굴비 꿰듯이 엮어 점화했다. 당시에는 이것을 ‘편포(編? 엮은 폭약이란 뜻)’라 했으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편포(鞭?)이다.
폭죽의 변천과정에 관해 ‘통속편배우(通俗編排優)’에는 “고대에 폭죽이라 한 것은 모두 진짜 대나무에 불을 붙여 폭발시켰기 때문에 당시(唐詩)에 폭간(爆竿)이라 했다. 후대에는 종이를 말아 사용했기 때문에 폭죽(爆竹)이라 칭했다.”라고 기록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일찍이 당송(唐宋)시대부터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점차 널리 퍼져 각 지역의 풍속이 되었다. 나중에는 단지 설을 쇨 때 귀신을 몰아내고 나쁜 기운을 쫓아내기 위해 폭죽을 터뜨렸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경사가 있을 때도 폭죽을 터뜨렸다.
──정견망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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