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효(孝)의 신묘함

향련 2008. 1. 30. 22:22
 

     효(孝)의 신묘함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윤리, 도덕, 질서, 예절 같은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여 사람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사람의 도리로서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가 효(孝)가 아닐까 한다.


효는 사람의 행위를 규범하기 위해 신이 사람에게 사람이 되는 규범을 전한  것이리라.

자식은 빚이라는 옛말이 있다.  빚은 무엇인가?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갚아야 할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윤회설에 의하면 사람은 살면서 선하던 악하던 많은 업을 짓게 되는데...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은혜와 원한관계가 있지 않겠는가? 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때는 이러한 원한관계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 가족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은 많은 인륜규범을 사람에게 정해 주었다. 道(도)와 德(덕), 仁(인) 義(의) 禮(예) 智(지) 信(신)등으로 사람들을 규범화 하였는데 ‘효’는 이러한 규범의 확장이다. 만약 사람이 신의 말을 따른다면 과거의 은혜와 원한이 많이 해결 될 것이고, 가정도 화목하고 낙관적으로 살게 될 것이다. 또한 늙어서도 근심이 없고 사회도 안정될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고생스럽게 키우면서 평생 자식을 위해 심려하는데 과거의 업을 갚는 거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 부모가 양육해 준 은혜에 보답한다면 과거의 은혜와 원한관계는 자연히 해결되는 것으로 신묘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거시적인 배치와 규범이  인류를 보호해 주고 있는 신의 섭리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제자 중에 민손(민자건)이라는 분의 효행을 살펴보자. 민손(민자건)은 공자 3천제자 중에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한 제자로 알려져 있다. 생모가 일찍 죽고 아버지가 재취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계모는 민손(민자건)을 심하게 학대하였다. 더구나 집안 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관계로 민손(민자건)은 어리지만 직접 수레나 마차를 끌면서 아버지를 도와 생계를 꾸려 나갔다. 계모는 아버지가 보는 앞에선 잘 해 주고, 아버지가 없을 때는 온갖 궂은일을 시켰다. 심지어 한겨울에  자신이 낳은 아들에게는 솜을 넣어 옷을 만들어 입히고, 민자건의  옷 속에는 솜 대신 갈대 잎을 넣어서 옷을 만들어 입혔다. 민손(민자건)은 이것을 알면서도 전혀 원망하지 않고 잘 참고 견뎠다. 또한 그는 계모 밑에서 학대와 설움을 받으면서도 계모를 정성껏 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까지의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불 같이 화를 내면서 이 후처를 당장 내 �으려고 했다. 그때에 민손(민자건)은 아버지께 이렇게 유명한 말을 한다.

“아버님 고정하십시오. 어머님이 계시면 아들 하나가 춥고, 어머님이 없으면 아들 셋이 춥습니다.민자건의 정성스러운 이 말에.....  아버지는 감동하고..... 계모도 회개하고 새 마음을 가져서 그 아들에게 잘하게 되어 가정을 지키게 되었다.


중년에 아버지가 죽어 삼년상을 치르는 중에 노나라에 전란이 일어나자 그는 상복 대신 군복을 입고 복역했으며, 그 일이 끝나자 돌아와서 아버지의 삼년상을 마친다. 민자건의 사람됨은 조용하고 공손하며 단정하였는데, 공자는 민자건의 모습을 "온화하도다(誾誾如也)""라고 하였다. 평소에 말은 매우 적게 하지만 일단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반드시 사리에 맞게 하였다고 한다.


정말 행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효를 행한 사례이다. 어떻게 자신이 그렇게 불우한 상황에서 인내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을까 깊이 생각하게 한다.

민자건은 공자 삼천 제자 중의 효와 덕행제일의 제자라 할 수 있는데, 일체의 은혜와 원망을 동시에 선해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부모를 죄악에 빠뜨리지 않고 가정을 지키고 효를 실천함으로 지극한 선에 이르는 공부를 실생활에서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조급하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 없는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오천년의 유구한 전통문화, 옛 현인에게서 배운다. 진실 되고 선량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