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홍, 맹광의 부부이야기는
擧案齊眉(거안제미)
: 아내가 밥상을 눈썹과 가지런하도록 공손히 들어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 즉, 아내가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을 이르는 말)
라는 고사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부부랍니다.
동한 초기의 은사 양홍(梁鴻)은
자는 백란(伯鸞)이며, 부평 평릉(현 섬서 함양 서북) 사람입니다.
그는 비록 가난했지만, 박학다식하고 지조가 굳은 선비였습니다.
그는 태학에서 공부하였으며,
학업을 마친 후 황실의 사냥터에서 돼지를 기르는 일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양홍이 조심하지 못하여 방에 불이 붙었고,
주위의 인가에 불길이 번지게 되었습니다.
양홍은 집집마다 찾아가 피해상황을 살펴본 후,
매 집마다 돼지로 보상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집이 보상이 너무 적게 되었습니다.
양홍은
“제가 더 이상 가진 재물이 없으니,
노동으로 갚고 싶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집주인은 양홍의 요청에 응하였습니다.
이후 양홍은 원망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아침저녁으로 성실하게 일을 하였습니다.
이웃집의 노인들이 양홍의 행동이 일반인과 다른 것을 보고,
집주인에게 그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된다고 모두 책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주인 역시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고,
돼지를 모두 양홍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양홍은 끝내 사양하고 받지 않았으며,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양홍의 인품에 반한 사람들이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려 하였으나,
양홍은 모두 정중히 사양하고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그와 동향인 맹씨에게 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데다 얼굴이 검고 못생겼으며,
힘이 장사여서 돌절구를 가볍게 들어 올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상냥하고
그 언행은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마을에서도 평판이 좋아 사방에서 혼담이 들어왔으나
그녀는 시집을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딸의 혼사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그것은 사윗감들이 그녀를 못생겼다고 나무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신랑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번 시집보내려 해도 가지 않아 이미 30세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그녀에게 왜 시집가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저는 양백란처럼 어질고 덕이 높은 사람과 결혼하겠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양홍이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예를 갖추고 그녀를 맞이하기로 하였습니다.
맹녀는 기쁘게 혼수를 준비하였습니다.
결혼 당일이 되자, 그녀는 아름답게 치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7일이 되도록 양홍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맹녀는 양홍의 면전에 꿇어앉아
“저는 일찍이 부군의 현명(賢名)을 듣고,
당신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부근께서는 수많은 청혼을 거절하시고,
마지막에 저를 아내로 택하셨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부군께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며 말했습니다.
양홍은
“나는 줄곧 내 아내는 마로 짠 옷을 입고,
나와 같이 깊은 산, 숲 속에서 은거할 수 있기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분을 바르고 머리를 빗고 있으니
어찌 내가 꿈꾸는 부인이겠습니까?”
그녀는 이 말을 들은 후, 양홍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며칠 동안 좋은 옷과 화려한 치장을 한 것은,
부군이 정말 제가 생각하는 현사(賢士)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바로 일하기 좋은 옷과 물품을 준비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후, 그녀는 머리를 감아올리고 무명옷을 입고는
베틀에서 베를 짜기 시작했습니다.
양홍은
“당신은 정말 나의 아내요!”
하며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맹광(孟光)이라는 이름과
덕요(德曜)라는 자를 지어주었습니다.
그녀의 인덕(仁德)이 빛과 같이 빛난다는 의미였습니다.
이후, 그들은 패릉(현 서안시 동북) 산속에서 은거하기 시작했습니다.
패릉산 깊은 곳에서 밭을 갈고 베를 짜며 지냈으며,
때때로 가야금 소리에 시를 읊으며 스스로 즐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홍이 농사일의 틈틈이 친구들에게 詩를 지어 보냈는데,
그 중에서 몇몇 시가 황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고,
이에 환멸을 느낀 양홍은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伯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지기로 있으면서
구차하게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그 때, 양홍이 방앗간지기로 고된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맹광은 남편을 반갑게 맞이하며
밥상을 눈썹 높이로 올려 바치면서 먹기를 권했다고 합니다.
['매귀처위구식 불감어홍전앙시 거안제미
(每歸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
<양홍이 매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는 늘 밥상을 차려 양홍 앞에서 감히 눈을 치뜨지 않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 올려 바쳤다.]-후한서(後漢書)의 양홍전(梁鴻傳)
고백통이 이것을 본 후, 크게 놀라며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이토록 공경하는 것을 보니,
그는 분명히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그 이후 고백통은 양홍일가를 그의 집안에 머물게 하고,
옷과 음식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양홍은 많은 책과 이론을 저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인품을 존경하며, 그의 의지를 따르고
극진한 내조로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
남편으로 하여금 마음 놓고 학문에 정진하게 하여
명저(名著)를 저술할 수 있게 한
맹광의 처사를 높이 칭송하여
'거안제미'(擧案齊眉)(밥상을 눈썹과 가지런하게 올린다)라고 합니다.
양홍은 아내가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꾸미고,
뚱뚱한 몸을 비단으로 감싸고 진실을 감춘 채 사는 것 보다는,
진심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며 살고자 하는 아내를 원했고,
맹광은 겸손하게 받아들여 일생을 검소하고 겸손하게
남편을 공경하며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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