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운(神韻)
미술전의 기연(奇緣)을 본 소감
향련
2009. 2. 9. 08:53
미술전의 기연(奇緣)을 본 소감 | |
등록일: 2009년 02월 08일 20시 | |
2009년 션윈(神韻) 예술단 국제순회공연에 나오는 창작무용극 ‘미술전의 기연’은 현재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진선인(眞善忍) 미술전’에서 실제 존재했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우선 간단한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막이 오르면 진선인(眞善忍) 미술전을 전시하는 어느 화랑의 모습이 보인다. 화면 가운데 황금색(황금색은 부처의 세계와 부처의 경지를 상징한다) 구름을 배경으로 아득히 높은 우주를 주관하는 거대한 부처를 그린 그림이 있고 좌우에는 파룬궁(法輪功) 진상을 알리는 몇 편의 그림이 걸려 있다. 무대 좌우에는 노란 바탕에 주황색 날개옷을 입은 비천 조각이 마치 하늘로 날아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중앙 왼편에는 흰옷을 입고 ‘眞善忍’ 띠를 두른 여인이 조용히 손을 들고 연공하는 모습을 새긴 조각이 보인다. 무대 좌우에서 미술전을 관람하던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오른 팔을 다쳐 팔걸이를 한 청년이 전시장에 나타난다. 화랑 이곳저곳을 진지하게 살펴보던 청년의 눈에 眞善忍 띠를 두른 여인의 조각이 보이자 조각의 동작을 흉내 낸다. 팔이 아파 제대로 동작을 취할 수는 없었지만 미술전의 부드럽고 온화한 에너지장에 동화된 청년은 문득 진심으로 연공(煉功)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그러자 마치 그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는 듯이 조각상의 여인이 살아 움직이며 청년에게 다가와 연공 동작을 시범 보여준다. 무심코 여인의 동작을 하나씩 따라하던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부러졌던 팔이 어느 새 정상으로 변한 것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기적이 나타난 것이다. 갑자기 웅장한 음악으로 바뀌면서 전시장이 황금색으로 찬란히 빛나는 장엄한 불국토(佛國土)로 변한다. 세상 도덕이 심하게 타락한 말법(末法) 시기임에도 확고히 수련하고자 하는 청년의 불성(佛性)이 나타난 것을 본 부처님이 청년을 기특하게 여겨 그를 격려하고 수련의 의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공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또 부처 세계를 상징하는 황금색 누각과 구름을 배경으로 비천들이 날아와 청년을 위해 춤을 춘다. 자신이 진정으로 되돌아갈 길을 찾았다는 기쁨에 청년은 감격에 겨워하며 천국 세계의 주인인 주불(主佛)께 감사의 예를 올린다. 잠시 후 청년의 확고한 수련 의지를 읽은 조각상 여인이 자신이 차고 있던 眞善忍 띠를 벗어 청년에게 걸어준다. 짧은 기쁨을 뒤로하고 음악이 다시 처음 주제곡으로 바뀌면서 현실 속으로 되돌아온다. 조금 전까지 환희에 차 있던 청년은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의혹을 느끼고 자신이 본 것이 과연 진짜인지 의심한다. 이때 문득 자신의 몸에 아직 眞善忍 띠가 걸려 있음을 발견한 청년은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것이 결코 환상이 아니었음을 믿고 더욱 분발해 반본귀진의 길에서 힘차게 전진한다.” 이 작품을 보고 난 첫 느낌은 바로 ‘불성(佛性)이 나타나면 시방세계(十方世界)를 진동한다’는 것이다. 한 평범한 청년이 수련할 결심을 내린 것이 뭐 그리 대단하기에 시방세계가 진동하는가? 천국 세계의 법왕인 부처가 직접 그를 위해 격려하고 비천을 보내 환영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하자면 우선 사람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역대로 수련계(修煉界)에서는 사람의 진정한 주인은 육신이 아닌 정신으로 보았는데 도가에서는 원신(元神)이라고 한다. 즉, 원신이야말로 사람의 진정한 주인이며 윤회전생의 주체이다. 사람의 원신은 대부분 높은 층차의 천상 세계에서 내원한 것으로 천상에서 죄를 지어 인류 공간으로 떨어져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인류 이 공간에 진입하면 육신의 굴레에 묶이게 되며 점차 후천적인 관념이 자라나 본성을 가로 막는다. 사람은 급기야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과 돌아갈 방향을 잃고 만다. 그러므로 원신이 맑게 깨어나 이지를 되찾고 자신의 원시적인 고향으로 되돌아가고픈 마음을 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가에서는 사람이 이런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가리켜 불성이 나왔다고 한다. 사람에게 이런 마음과 각오가 있어 불성이 나타나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들이 감동해 그를 격려한다. 이 작품에서 표현한 청년의 기쁨과 환희는 바로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매다 드디어 자신이 돌아갈 길을 찾은 어린아이의 기쁨에 비유할 수 있다. 둘째, 공연 여러 부분에 등장하는 비천(飛天)에 관한 내용이다. 비천이란 천녀(天女)라고도 하며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신(神)의 일종이다. 주로 부처가 설법하는 곳이나 보살이 머무르는 곳에 나타나 허공을 날며 꽃을 뿌리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인도 불교에서는 주로 한 쌍의 남녀 비천이 꽃을 뿌리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신선(神仙)과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션윈 예술단은 대다수 파룬궁 수련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련인이 천목(天目)으로 본 천상의 광경을 첨단 기술을 사용해 완벽하게 재현했다. 왜냐하면 수련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고 심성(心性)이 제고된 수련인만이 신불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고대 예술 작품이 지금까지도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당시 예술가들이 자신의 경지에서 파악한 천국 세계의 모습을 진실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돈황 석굴에 나오는 비천 벽화와 같은 작품이 지금 시기에 다시 나오기 어려운 이유는 비천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성과 경지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일반인이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고 하여 누구나 다 수련에 입문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련이란 사람이 생사의 큰 관을 넘고, 끊임없이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는 힘든 과정을 거쳐 위대한 각자(覺者)로 거듭나는 가장 위대하고 수승(殊勝)한 일이다. 때문에 누구나 원한다고 다 수련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그 한 법문(法門)의 주(主)나 왕(王)의 인가를 얻어야 한다. 또, 신불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천국 세계의 장엄한 광경을 함부로 보여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신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반인은 신을 볼 자격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신 심성이 아주 좋고 근기가 좋은 사람이나, 수련인, 특별한 사명을 띠고 세상에 내려온 사람들만이 자신의 층차에서 일부 광경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아주 대단하고 이성적이라고 여기겠지만 사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신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삶이 가련하고 비참하다. 이 작품에서도 미술전을 관람한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팔을 다친 청년만이 수승하고 장엄한 천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청년이 부처님과 인연이 있고 그의 마음이 순수하고 올바르기 때문이다. 한편 흔히 수련 초기에 성심으로 열심히 수련하던 사람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애초의 순수했던 열정이 사라지면 자신의 수련에 대해 회의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즉, 의혹이 생기는 것이다. 이럴 때 깨달음을 얻어 득도한 스승이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 법(法)이 없다면 혼자서는 결코 수련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다. 이 작품에서는 眞善忍 띠를 통해 청년의 수련을 지도하는 원리를 제시했다. 즉, 띠로 표현된 眞善忍 대법(大法)의 경전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음을 발견한 청년은 다시 희망을 갖고 열심히 법에 따라 수련에 정진할 의지를 다진다. 끝으로 기연(奇緣)에 대해 살펴보면 ‘기(奇)’란 특이하고 진귀하며 범상치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아주 뛰어난 인재를 기재(奇才)라 하거나 재능이 출중한 인물을 기사(奇士)라 한다. 그러므로 ‘기연’이란 일상적으로 보기 힘든 특별하고 기이한 인연을 뜻한다. 신전문화의 입장에서 볼 때 사람에게 가장 특별한 인연은 바로 자신이 왔던 원래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인연이다. 사람이 자신의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반본귀진의 귀로, 그것이 바로 수련이다. 서울경희한의원 임영철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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